결재는 났는데, 아무도 안 쓴다
지난 회에서 「도입은 IT팀이, 운영은 누가」를 다뤘다. 담당자를 지정하고 조직도를 정리했다고 하자. 그 다음 흔히 마주치는 장면이 있다. 도입 완료 보고서에 서명한 지 두 달째, 대시보드를 열어보면 활성 사용자가 결재자 자기 자신 한 명이다.
「직원들이 변화를 싫어한다」로 결론을 내고 싶어진다. 필자도 처음엔 그렇게 봤다. 교육을 늘리고, 사내 공지를 다시 돌리고, 「지금부터는 필수 사용」이라는 문구까지 붙였는데도 사용률이 안 오른다. 이 시점에서 방향을 바꿔야 한다.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동선이다.
「저항」이라는 오진의 비용
변화 저항으로 진단하면 처방이 정해진다. 교육이다. 그런데 교육을 아무리 늘려도 사용률과 상관관계가 잘 안 잡힌다. 한국의 최근 조사에서 AI를 도입한 기업은 69.5%인데, 실제 업무 표준으로 정착한 기업은 12.5%였다. 도입과 정착의 격차가 다섯 배 반이다. 이 격차가 전부 「교육 부족」 탓이라면, 세상의 어떤 회사도 사용률 문제로 골머리를 앓지 않을 것이다.
미국 조사도 방향이 같다. 지난 1년 사이 AI 투자를 늘린 기업이 85%인데, 그 기간 안에 유의미한 성과를 본 곳은 6%. 그리고 도구를 실제 업무 흐름 안에 통합한 조직은 27%에 그친다. 나머지 73%는 도구를 「업무 옆에」 놓아둔 상태다. 옆에 놓인 도구는 쓰이지 않는다. 문 옆에 세워둔 우산을 챙기지 않고 나가는 것과 같다.
실제 원인 — 창을 두 개 여는 순간 끝난다
현장에서 관찰되는 패턴은 대개 이런 식이다.
영업 담당자는 하루 종일 CRM 화면 안에서 산다. 그 옆에 별도 브라우저 탭으로 AI 도구를 열어야 한다. 요약본을 받으면 다시 복사해서 CRM에 붙여넣는다. 이 「탭 하나 더」가 실제 저항의 정체다. 시간으로 재면 한 번에 15초, 하루 열 번이면 2분 반. 큰 숫자는 아니지만, 매일 반복되는 마찰은 사용률을 조용히 갉아먹는다. 그리고 사람은 「내가 이 도구를 왜 안 쓰지」를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그냥 손이 안 간다.
제조업 사무직도 비슷하다. 발주서 확인 업무의 90%가 엑셀 안에서 일어난다. 그런데 검수 AI를 도입하면서 웹 대시보드에 로그인하도록 만들어놓는다. 「하루 두 번만 로그인하면 됩니다」로는 안 된다. 두 번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로그인해서 결과를 다시 엑셀로 옮기는 그 흐름 자체가 원래 없던 동작이라 몸에 안 붙는 것이다.
동선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의 의미
해법의 방향은 하나다. 사람을 도구에 맞추는 게 아니라, 도구를 사람의 하루 안으로 밀어넣는다. 실무적으로는 세 가지 형태로 나뉜다.
첫째, 쓰던 화면에 얹는 방식. CRM 상세 페이지 하단에 AI 요약 카드가 그냥 떠 있는 형태다. 사용자는 「AI를 쓴다」는 의식조차 없이 그 카드를 읽는다. 사용률을 재는 지표 자체가 무의미해진다. 그냥 쓰는 상태가 된다.
둘째, 쓰던 메신저 안으로 넣는 방식. 슬랙·팀즈·카카오워크에 봇으로 접근하게 한다. 별도 앱이 없으므로 로그인·전환·다중 창 문제가 사라진다. 한 중견 회사는 「경비 처리 문의는 봇에게」 하나만 열어놨는데 첫 달 이용률이 40%를 넘겼다. 별도 포털을 만들었을 때보다 여덟 배 높은 숫자였다.
셋째, 쓰던 엑셀·문서 안에서 실행하는 방식. Copilot 계열이 이 방향으로 밀어붙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이미 열려 있는 파일」에서 결과가 나온다는 점만으로 초기 저항이 상당히 낮아진다.
도입 전에 물어야 할 세 질문
솔직히 말하면, 이 세 질문은 도입 결재 전에 던져야 한다. 뒤늦게 물어도 늦지는 않지만, 결재 후 6개월이 지나면 재설계 비용이 초기 설계 비용을 넘어선다.
첫째, 이 도구가 대체하려는 업무를 담당자가 하루에 몇 번, 어느 화면에서 하는가. 둘째, 결과물이 나온 다음 그 결과물이 흘러가야 할 시스템은 무엇인가. 셋째, 그 흐름을 만들려면 클릭이 몇 번 필요한가. 세 번째 질문의 답이 「세 번 이상」이면 대개 안 쓰이게 된다. 세 번은 사람의 습관을 이기지 못하는 숫자다.
다음 회에서 이어질 이야기
도구를 동선 안으로 넣는 데 성공했다고 하자. 그러면 원래 그 업무를 하던 사람에게 시간이 남는다. 이 남은 시간이 무엇으로 채워지느냐가 다음 문제다. 「사람이 남는다」가 아니라 「일이 바뀐다」로 프레임을 옮기는 이야기 — 다음 회에서 역할 재설계의 실무를 다룰 예정이다.
이번 이야기의 앞 편이 궁금하다면 「도입은 IT팀이, 운영은 누가 — AI 담당의 자리」를 먼저 읽어두면 흐름이 이어진다. 「누가 관리하나」가 정해진 조직이라야 이번 편의 「어디에 놓을까」 논의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내에서 「도입은 했는데 안 쓰인다」라는 이야기가 반복되고 있다면, 동선 재설계 상담을 신청해도 좋다. 도구를 바꾸는 이야기가 아니라, 도구가 놓일 자리를 다시 그리는 관점의 대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