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재 다음 날 아침
"AI 도입은 잘 끝났는데, 이 다음은 누가 봅니까."
지난달, 어느 제조사 임원 회의실. 화이트보드 앞에서 부장 한 명이 팔짱을 낀 채 던진 질문이었다. PoC는 성공적으로 마쳤고, 결재도 났고, 계약도 끝났다. 그런데 방 안의 어느 누구도 손을 들지 않았다.
이번 시리즈에서는 여섯 회에 걸쳐 AI를 도입한 뒤 조직이 실제로 부딪히는 「사람과 자리」의 문제를 다룹니다. 첫 회는 그 방의 침묵에 관한 이야기, AI 담당의 자리입니다.

도입은 IT팀이, 운영은 공백
대부분의 회사에서 AI 도입은 IT팀이나 외부 파트너가 주도합니다. 문제는 프로젝트가 종료되는 순간입니다. IT팀은 다음 과제로, 외부 파트너는 계약 종료로 물러납니다. 남는 것은 도구와, 그 도구를 쓰기로 한 조직뿐이죠.
RAND가 2024년 발표한 조사에서는 AI 프로젝트의 70~80%가 예상한 비즈니스 성과에 미달했다고 보고합니다. 일반 IT 프로젝트 실패율의 두 배입니다. 우리가 최근 만난 회사들의 사례를 종합하면, 실패의 큰 몫은 모델 정확도가 아니라 운영 주체의 부재에서 옵니다. 도구는 있는데 밀고 나갈 사람이 없다.
새로 만들 것인가, 얹을 것인가
이 자리를 채우는 방식은 크게 두 갈래입니다. 하나는 전담 조직을 새로 만드는 방식. IBM의 2026년 조사에서는 참여 조직의 76%가 CAIO(최고AI책임자) 직책을 두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1년 전 26%에서의 급증이죠. 다만 응답자는 대부분 글로벌 대기업이라, 한국 중견·중소기업의 현실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또 하나는 기존 팀의 누군가에게 얹는 방식입니다. 「IT팀장이 겸임」 「경영기획팀에서 담당」의 형태로 자주 나타납니다. 현실적이지만, 겸임자의 원래 KPI가 따로 있는 한 AI 운영은 늘 후순위로 밀립니다.
규모별 현실적인 임계점
여러 회사를 지켜보며 정리한 임계점은 대략 이렇습니다. 50인 이하 회사에서 별도 조직은 사치입니다. 임원 한 명이 「AI 총괄」 모자를 쓰고, 실무는 IT 겸임 0.3인 수준으로 굴러가죠. 이때 임원이 매주 30분만이라도 이 주제를 정례 안건으로 올리느냐가 성패를 가릅니다.
50인에서 300인 사이는 전담 1인이 최소 임계점입니다. 직함은 「AI PM」이든 「DX 매니저」든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건 이 사람의 주간 업무 시간의 60% 이상이 AI 운영에 배정돼 있느냐입니다. 30% 겸임은 자기 위안에 가깝다. 아무도 나머지 70%를 감독하지 않기 때문에, 결국 원래 하던 일이 시간을 다 먹어버립니다.
300인 이상 규모에선 최소 2~3인의 팀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임원 스폰서가 결재선을 짧게 유지해야 합니다. 결재 계단이 세 개만 되어도, 실험 속도는 회사의 속도가 아니라 결재 사이클의 속도로 떨어집니다.
이 자리에 필요한 세 가지
직함을 만드는 것과 자리가 굴러가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필요한 것은 셋. 시간, 권한, 예산의 자율성입니다.
시간은 앞서 말한 60% 기준선. 권한은 부서 간 프로세스를 조정할 임원 스폰서십입니다. 스폰서 없는 담당자는 6개월 안에 지칩니다. 예산의 자율성은 월 수백만 원 규모의 도구 계약이나 파일럿을 매번 상급 결재 없이 시도할 여지를 뜻합니다.
솔직히, 이 세 조건을 처음부터 다 만족시키는 회사는 드뭅니다. 대개는 첫해에 한두 개가 빠진 채 시작하고, 담당자가 소진되어 이직한 뒤에야 남은 조건을 채우죠. 저희 5years+가 한국·일본 회사들과 일하며 반복해서 본 패턴입니다.
자리가 비면 벌어지는 일
한 유통사의 이야기입니다. 챗봇을 도입했지만 운영 담당이 지정되지 않은 채 여섯 달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상품 카탈로그는 두 번 개편됐고, 프로모션 규칙도 바뀌었죠. 챗봇 응답은 점점 어긋났고, CS팀은 「AI 답변이 틀렸다」는 항의를 매일 받았습니다. 결국 CS팀장이 대표에게 「그거 그냥 끄자」고 요청했습니다. 도구가 나빴던 게 아니라, 도구를 돌보는 자리가 없었을 뿐입니다.
결재 직전에 물어야 할 한 가지
도입 결재를 앞두고 있다면 이 질문 하나만 남겨두시기를 권합니다. 「이 프로젝트가 종료된 다음 달 첫째 주, 이 도구의 성능·비용·사용률을 누가 봅니까.」 답이 즉시 나오지 않는다면, 그 자리를 설계하는 일이 도입 그 자체보다 먼저입니다.
다음 회에서는 자리는 만들어졌지만 정작 현장 직원들이 도구를 안 쓰는 상황을 다뤄봅니다. 저항의 문제라기보다 동선의 문제인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지금 이 자리를 어떻게 설계할지 고민 중이시라면, 저희에게 편하게 상담해보시는 것도 방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