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천이면 됩니까."
지난주 한 제조 중견기업 대표님과의 미팅 첫 5분. 다른 회사 견적을 꽤 보신 분이었다. 그런데 두 자리에서 답이 너무 다르게 나와서 오히려 더 혼란스러우셨다고 했다. "1,200만원짜리도 있고 1억 5천짜리도 있어요. 같은 챗봇이라는데."
이 대표님 질문이 사실 이번 회차의 출발점이다. AI 도입 비용은 왜 이렇게 폭이 큰가, 그리고 우리 회사에는 어느 자리가 맞나.
이전 회 AI 도입 단계별 로드맵 — PoC부터 본 운용까지에서 PoC → 파일럿 → 본 운용으로 이어지는 4단계 로드맵을 다뤘다. 단계가 정해지면 그다음 결재자가 가장 알고 싶어 하는 건 결국 두 가지다. 얼마가 들고, 얼마나 걸리는가.
이번 회차에서는 가격표 대신 규모감으로 이야기한다. 같은 "AI 챗봇"이라도 데이터 출처가 한 종류인지 열 종류인지, 사용자가 사내 50명인지 외부 5,000명인지에 따라 자릿수가 한 자리씩 움직인다. 숫자 한 개를 외우는 것보다, 우리 회사가 어느 구간에 서 있는지 가늠하는 감각이 결재 회의에서 훨씬 도움이 된다.
비용을 결정하는 4가지 변수
견적이 천차만별인 이유는 변수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같은 "RAG 챗봇"이라도 다음 4가지에 따라 자릿수가 달라진다.
- 데이터 정비 상태 — 자료가 PDF로 잘 정리돼 있는지, 사내 곳곳에 흩어진 엑셀·이미지·구두 지식인지에 따라 데이터 파이프라인 공수가 2~5배 차이 난다. 솔직히 이 변수가 가장 크다.
- 사용자 수와 동시 접속 — 사내 30명 대상과 외부 고객 5,000명 대상은 전혀 다른 인프라가 필요하다. 후자는 모니터링·장애 대응까지 포함된다.
- 기존 시스템 연계 깊이 — ERP·CRM·메신저와 양방향 연계가 필요하면 인터페이스 개발이 별도 모듈로 들어간다.
- 운영 책임 범위 — 납품 후 손 떼는지, 6개월 안정화까지 포함하는지, 1년 운영 SLA까지 책임지는지에 따라 총액이 분명히 달라진다.
이 4가지를 미리 정리해 가서 견적을 받으면, 견적서 사이의 차이가 갑자기 설명되기 시작한다.
도입 규모별 — 어느 자리에 서 계십니까
가격표를 직접 노출하기보다, 업계에서 일반적으로 형성되는 범위감으로 정리한다. 동일 분야의 공개된 정부 지원사업 단가나 SaaS MVP 견적을 참고하면 다음과 같은 자리가 보인다.
스몰스타트 (수백만원 ~ 천만원대)
FAQ 챗봇, 단일 업무 자동화 1~2건, 사내 30~50명 사용. 기간은 4~8주. 공급기업 입장에서는 사실상 PoC 그 자체. 결재자 관점에서는 "이거 진짜 우리 회사에서 쓸 수 있나"를 가장 적은 비용으로 확인하는 자리다.
중간 규모 (수천만원대)
RAG 사내 지식 챗봇, 다부서 도입, 외부 시스템 1~2개 연계. 기간은 8~16주. 정부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26년 중소제조 특화 Multi AI Agent PoC 사업도 과제당 최대 3억원 규모, 6개월 일정으로 설계돼 있다(출처: 중소벤처기업부 R&D 공고). 정부 지원이 75%까지 들어가는 사업 단가가 시장 시세의 한 기준점 역할을 한다.
전사 운영 (1억 ~ 수억원대)
다업무 AI 에이전트, 외부 사용자 대상, 다중 시스템 연계, 장기 SLA 포함. 기간은 6~12개월 이상. 해외 시장에서도 B2B AI SaaS MVP가 보통 3.5만~7만 달러(대략 4,800만~9,500만원) 수준에서 시작되며, 본 운용·확장으로 갈수록 자릿수가 한 단계 올라간다(출처: SEM Nexus, MVP Development Cost for AI-Powered SaaS 2026).
여기서 중요한 건 "우리 회사가 어느 자리에 서 있는가"보다 "어느 자리에서 시작할 것인가"다. 처음부터 1억대 본 운용을 잡아두면 의사결정 자체가 안 끝난다. 반대로 너무 작게 시작하면 PoC만 끝나고 회사가 잊는다.
기간의 자릿수 — 6주, 6개월, 1년
비용보다 결재자에게 더 와닿는 건 사실 기간이다. "1년 뒤에 끝납니다"와 "6주 안에 첫 결과가 나옵니다"는 회사 분위기를 완전히 다르게 만든다.
업계에서 통용되는 기간 자릿수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 PoC 단계: 4~8주. 한 가지 업무, 한 가지 데이터, 동작하는 화면 하나가 목표.
- 파일럿 단계: 3~6개월. 한 부서에서 실제 업무에 적용해 운영 안정성과 사용자 반응을 본다. 위에 인용한 정부 R&D 공고도 PoC 1단계를 6개월로 설정하고 있다.
- 본 운용 진입: 6~12개월. 전사 확대, 운영 SOP 정착, 모니터링·재학습 체계 구축까지 포함된다.
"30%를 줄였다"라고 하면 추상적으로 들리지만 — 한 부서 100건 업무 중 30건이 사라진다는 말이다. 첫 PoC 6주에 이 숫자를 한 번 보면, 이후 결재 회의의 톤이 바뀐다. 반대로 6주 안에 아무 숫자도 못 만들었다면, 본 운용으로 넘기기 전에 한 번 멈춰야 한다.
결재 회의에서 쓰실 한 페이지
회의 한 번에 정리해야 한다면 다음 5줄이다.
- 우리 회사의 데이터 정비 상태가 정리됐는지 흩어졌는지
- 첫 도입은 사내 사용자인지 외부 고객인지
- 6주 PoC에서 눈으로 볼 결과 1개가 무엇인지
- 본 운용까지 갈 때 누가 운영할 것인지(사내·외주·혼합)
- 1단계 예산 자릿수를 어디에 둘 것인지(수백·수천·억)
이 다섯 줄이 정리되면, 견적 회의에 가서도 "1,200만원짜리"와 "1억 5천짜리"가 같은 단어("AI 챗봇")로 묶여 있던 이유가 보인다. 그리고 우리 회사에는 어느 자리가 맞는지가, 견적서 한 장보다 먼저 보이기 시작한다.
5years+에서는 한국·일본 중소·중견기업 대상으로 PoC부터 본 운용까지 단계를 함께 설계해 왔다. 사례별 견적 가이드 자료는 회사 상황에 맞춰 무료로 보내드린다. 자릿수 감각이 한 번 잡히면, 이후 결재 회의는 훨씬 빨라진다.
다음 회 예고
비용·기간을 정했다면, 그다음 결재자가 묻는 질문은 정해져 있다. "그래서 효과는 어떻게 잴 겁니까." 다음 회에서는 AI 도입 ROI 측정법 — 도입 후 무엇을 어떻게 측정하나를 다룬다. 정량·정성 지표를 어떻게 짜고, 회사 문서로 어떻게 남길지의 이야기다.